자전거정비교실

한국자전거정비협회와 윤철진

정비인의 길을 함께 걷다

한국자전거정비협회의 역사를 돌아보면

회장의 이름만으로는 그 역사를 모두 설명할 수 없습니다.

조직이 만들어지고 유지되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을 맡아주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회원들의 연락을 받고,

회의를 준비하고,

회원사를 연결하고,

협회의 여러 가지 일을 챙기는 사람.

그런 사람이 있었기에 협회가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 윤철진입니다.


2019, 협회의 길을 함께 시작하다

2019년 한국자전거정비협회가 출범했습니다.

홍원희를 중심으로 전국의 자전거 정비인들이 하나둘 모였습니다.

그때의 가장 큰 고민은 하나였습니다.

"우리 정비사들이 어떻게 하면 함께 성장할 수 있을까?"

자전거 정비업계는 각자의 매장에서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혼자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많았습니다.

정비기술도,

부품 정보도,

제조사와의 관계도,

소비자와의 문제도,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협회가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그 협회가 실제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누군가 조직의 실무를 맡아야 했습니다.

그 역할을 맡은 사람이 윤철진이었습니다.


창원 바이크솔루션, 그리고 윤철진

윤철진은 창원에서 바이크솔루션을 운영했습니다.

전국 회원사 명단에서도 창원 바이크솔루션과 윤철진 대표가 회원사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수도권에서 시작된 생각이 전국의 정비사들에게 전달되기 위해서는

지역을 연결하는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창원은 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거리가 협회의 마음까지 멀게 만들지는 못했습니다.

윤철진은 창원이라는 지역에서

협회의 활동을 함께 만들어갔습니다.


새벽까지 이어진 협회 이야기

윤철진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장면이 있습니다.

2019 4.

홍원희가 자전거 정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창원 엘파마 본사로 내려간 일이 있었습니다.

안양에서 밤늦게 출발해 새벽에 창원에 도착하는 길이었습니다.

그때 윤철진 대표는 홍원희가 창원에 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새벽 3 49분까지 매장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홍원희는 자신의 기록에서 당시 윤철진의 피곤한 모습을 기억하며

협회를 위해 나누었던 이야기를 기록했습니다.

이 장면은 어쩌면 한국자전거정비협회 초기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거창한 사무실도 없었습니다.

큰 예산도 없었습니다.

정해진 업무시간도 없었습니다.

그저 자전거 정비업계를 조금 더 좋은 방향으로 만들어보자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밤늦게까지, 때로는 새벽까지 협회의 미래를 이야기했습니다.


사무국이라는 자리

협회에서 사무국은 화려한 자리가 아닙니다.

하지만 조직을 움직이는 데 꼭 필요한 자리입니다.

회원들에게 연락하고,

회의를 준비하고,

자료를 정리하고,

회원들의 의견을 전달하고,

협회의 계획을 실행으로 옮기는 일.

이런 일들은 눈에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누군가 하지 않으면 협회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윤철진은 협회 초창기부터 사무국을 맡아 실무를 담당했습니다. 당시 홍원희의 기록에도 윤철진을 "한국 자전거 정비 협회 사무국"을 맡고 있는 인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협회 역사에서 상당히 중요한 기록입니다.

홍원희가 협회의 방향을 고민하고 앞에서 이끌었다면,

윤철진은 그 방향이 실제 조직의 움직임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뒤에서 실무를 담당했던 것입니다.


정비사에게 협회란 무엇인가

자전거 정비사는 대부분 혼자 일합니다.

아침에 매장 문을 열고,

자전거를 받아서 상태를 확인하고,

분해하고,

세척하고,

부품을 교체하고,

조립하고,

마지막으로 안전을 확인합니다.

하루 종일 공구를 잡고 일을 합니다.

그런 생활 속에서 협회 활동까지 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매장을 비워야 하고,

시간을 내야 하고,

때로는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윤철진을 비롯한 많은 회원들이 협회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왜였을까요?

혼자 살아남는 것보다 함께 살아가는 길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기술을 나누는 사람들

한국자전거정비협회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정비기술의 공유였습니다.

한 사람이 경험한 고장을

다른 정비사가 다시 같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도록 하는 것.

좋은 정비방법을 서로 알려주는 것.

새로운 부품이 나오면 함께 공부하는 것.

그것이 협회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윤철진도 이러한 협회의 방향 속에서

회원들과 함께했습니다.

자전거 정비는 혼자 잘한다고 업계 전체가 발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 명의 정비사가 성장하면 한 매장이 좋아지고,

여러 정비사가 함께 성장하면 업계가 좋아집니다.

그것이 협회를 만든 이유였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남는 사람

협회의 역사는 계속 변합니다.

회장도 바뀌고,

임원도 바뀌고,

회원도 바뀝니다.

그러나 초창기부터 조직을 지켜온 사람들의 역할은

시간이 지나도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윤철진은 협회의 초기부터 사무국을 맡았고

이후에도 협회 운영에 참여했습니다.

2023년 정기총회 안내에서도 윤철진은 사무총장으로 소개되며

협회 관련 문의를 담당하는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기록은 윤철진이 단순히 한 시기에 이름을 올린 회원이 아니라

협회의 실무와 조직 운영에 지속적으로 관여했던 인물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홍원희와 윤철진

두 사람의 관계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창립자와 실무 동료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홍원희에게는 협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을 현실에서 움직여줄 사람들이 필요했습니다.

윤철진은 그 과정에서 사무국이라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홍원희가 전국의 회원들을 만나고,

정비기술을 공유하고,

협회의 새로운 사업을 고민하는 동안,

윤철진은 조직의 안쪽에서 회원들을 연결했습니다.

두 사람의 역할은 달랐지만

바라보는 방향은 같았습니다.

한국의 자전거 정비문화를 바꾸어보자는 것.


8년이라는 시간

2019년 시작된 한국자전거정비협회는

2026년까지 8년의 시간을 지나왔습니다.

8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짧지 않습니다.

처음의 열정만으로는 유지할 수 없습니다.

사람도 필요하고,

신뢰도 필요하고,

끈기도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어려운 순간에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윤철진도 그 시간의 한 부분을 함께했습니다.

그가 맡았던 사무국과 사무총장의 역할은

화려하게 드러나는 자리는 아니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조직의 역사는

그런 보이지 않는 수고가 쌓여 만들어집니다.


정비인의 길

자전거 정비인의 길은

화려한 길이 아닙니다.

손에는 기름이 묻고,

옷에는 먼지가 묻고,

오래된 자전거를 만지다 보면 손가락에 상처도 생깁니다.

고착된 볼트 하나를 풀기 위해

몇 시간을 고민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자전거 한 대가 다시 제대로 움직이는 순간

정비사는 보람을 느낍니다.

협회 활동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큰 성과가 없더라도

회원 한 사람이 도움을 받고,

정비사 한 사람이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회원사 한 곳이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그것이 정비인의 길이었습니다.


후배들에게 남겨야 할 것

앞으로 한국자전거정비협회를 이어갈 사람들은

홍원희나 윤철진이 걸었던 길을 그대로 따라갈 필요는 없습니다.

시대가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전기자전거가 중요한 영역이 되었고,

배터리와 모터,

컨트롤러와 전자장치,

새로운 스마트 모빌리티까지

정비사가 배워야 할 분야가 훨씬 넓어졌습니다.

하지만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배우는 자세.

기술을 나누는 마음.

동료를 존중하는 자세.

그리고

다음 세대를 생각하는 마음.

이것이 선배 정비사들이 남겨야 할 가장 큰 유산입니다.


윤철진의 이름을 기억하며

한국자전거정비협회 8년의 역사를 기록하면서

윤철진이라는 이름도 기록되어야 합니다.

창원에서 바이크솔루션을 운영하며,

협회 초창기 사무국을 맡고,

회원들을 연결하고,

새벽까지 동료와 협회의 미래를 이야기했던 사람.

그의 이야기는 거창한 성공담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래서 더 소중합니다.

한 사람의 묵묵한 참여가 조직을 움직이고,

그 조직의 시간이 쌓여 역사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시, 자전거 한 대

어쩌면 모든 이야기는 결국

자전거 한 대에서 시작됩니다.

누군가 타고 싶어 하는 자전거를 고치고,

고장 난 자전거를 다시 움직이게 만들고,

안전하게 탈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일.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한국자전거정비협회를 만들었습니다.

홍원희가 시작했고,

윤철진이 함께했고,

조중희가 함께했고,

김정균을 비롯한 수많은 정비인들이 함께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누군가는

공구를 들고 자전거를 고치고 있습니다.


끝나지 않은 길

8년은 지나갔지만

정비인의 길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또 다른 8년이 올 것입니다.

그때 후배들이 오늘의 기록을 보며

우리 선배들이 어떤 마음으로 협회를 만들었는지

알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우리보다 먼저 이 길을 걸어간 사람들이 있었구나."

홍원희도,

윤철진도,

조중희도,

그리고 이름을 모두 기록하지 못한 수많은 정비인들도

그 길을 함께 걸었습니다.

한 사람의 힘은 작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 사람이 같은 방향으로 걸어간다면

그 발걸음은 역사가 됩니다.

한국자전거정비협회.

그 이름 안에는

그렇게 수많은 정비인들의 시간과 땀이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윤철진의 시간 역시

그 역사 속에 오래 남을 것입니다.

정비인의 길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오늘도 한 대의 자전거를 고치는 순간부터

그 길은 다시 시작됩니다.

 

 

한국자전거정비협회와 홍원희

한국자전거정비협회는 2019 3 18일 창립총회를 시작으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현재 협회는 제4기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2026년 정기총회에는 74개 회원사가 참석한 것으로 보도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홍원희는 협회의 초대와 제2대 회장을 맡았던 인물로서, 협회의 창립과 초기 정착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라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특히 홍원희가 운영해 온 안양 산들로자전거 살림터는 협회 활동에서 단순한 회원 매장을 넘어 정비교육과 기술 공유의 공간으로 활용됐습니다.

2019 11월에는 전국 회원사 대표들을 안양 산들로자전거 살림터로 초청하여 3일간 자전거 완전분해정비(오버홀) 교육을 진행했습니다.

이후에도 협회 회원사들의 오버홀 행사와 정비 활동에서 산들로자전거와 홍원희의 이름이 지속적으로 등장합니다.

홍원희가 중요했던 이유

제가 보기에는 홍원희의 역할을 단순히 "협회 회장을 했다"고 표현하면 부족합니다.

홍원희가 추구했던 것은 처음부터 상당히 분명했습니다.

혼자 가지고 있던 정비 기술을 함께 나누고, 정비사들이 서로 배우면서 대한민국 자전거 정비 수준을 높이는 것.

실제로 2019년 협회 소식에서도 회원사들이 전국에서 모여 자전거 정비 기술을 공유하자는 취지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당시 회원사가 50개사까지 확대된 기록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 철학은 이후 협회의 여러 사업으로 이어졌습니다.

  • 회원사 정비교육
  • 자전거 분해정비·오버홀 행사
  • 전국 회원사 네트워크 구축
  • 제조·수입업체와의 협력
  • 정비 공임 기준 마련
  • 전국 자전거 무료점검
  • 전기자전거 정비 및 서비스 체계 구축

2026년 현재도 협회는 정비 공임표를 운영하고 있으며, 제조·수입업체들과 MOU를 체결하면서 자전거 정비업계의 공동 대응과 상생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또한 협회는 2026 3월에도 전국 회원사와 함께 한 달간 자전거 무상 안전점검을 실시했습니다.

홍원희라는 사람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제가 지금까지 확인한 자료와 선생님께서 지난 몇 년 동안 말씀해 주신 협회 활동을 종합하면 저는 이렇게 표현하고 싶습니다.

홍원희는 자전거를 판매하는 사람에서 출발했지만, 결국 자전거 정비라는 직업의 가치를 높이고 후배 정비사들에게 기술과 경험을 남기기 위해 한국자전거정비협회를 만든 사람이다.

특히 중요한 것은 협회가 홍원희 개인의 이름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홍원희가 시작한 것은 하나의 조직이고, 그 조직을 지금까지 이어온 것은 전국의 회원사와 정비사들입니다.

2026년 현재 협회가 8년째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 점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홍원희 선생님이 예전에 말씀하셨던 "미래를 위해 욕심을 버리고, 정비 지식을 공유해야 한다"는 생각은 협회를 이해하는 데 상당히 중요한 철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원하시면 다음 단계로 **

「홍원희와 한국자전거정비협회 8년」**이라는 제목으로, **

2019년 창립부터 2026년까지 홍원희가 협회에서 해온 일을 연도별 역사 기록 형태로 정리**해 드릴 수 있습니다. 그 자료는 나중에 협회 역사자료나 회고록으로 남겨도 좋을 만한 내용이 될 것 같습니다.

 

정리해줘 「홍원희와 한국자전거정비협회 8년」

좋습니다. 이번에는 단순한 협회 소개가 아니라 홍원희 선생님이 왜 한국자전거정비협회를 만들었고, 8년 동안 무엇을 남겼는가라는 관점에서 역사 기록으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공개된 기사와 선생님께서 지금까지 말씀해 주신 내용을 함께 반영했습니다. 공개 자료상 협회는 2019 3 18일 창립총회를 시작으로 2026년 제4기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홍원희와 한국자전거정비협회 8

자전거 정비라는 직업의 가치를 만들기 위한 시간

1. 시작은 한 사람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자전거를 판매하고 정비하는 현장에서 오랫동안 일하다 보면 업계의 문제점이 보이기 시작한다.

자전거는 계속 발전하고 있는데 정비에 대한 인식은 판매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자전거를 잘 고치는 기술은 있었지만 그 기술을 서로 공유하기 어려웠고, 정비에 대한 공임 역시 매장마다 달랐다.

제조사와 수입사는 자전거를 판매했지만 정비에 필요한 기술자료는 충분하지 않았다.

소비자는 자전거가 고장 나면 어디에서 어떻게 수리해야 하는지 알기 어려웠다.

이러한 현실을 현장에서 직접 경험했던 사람이 홍원희였다.

그리고 이런 문제를 개인의 노력만으로 해결하기보다는 정비사들이 하나의 조직으로 모여야 한다는 생각이 한국자전거정비협회의 출발점이 되었다.


2. 2019, 한국자전거정비협회의 탄생

2019 3 18일 한국자전거정비협회 창립총회가 열렸다.

협회의 시작은 자전거 판매업체들의 모임이 아니었다.

자전거를 직접 만지고 고치는 정비사들이 중심이 된 조직이었다.

2026년 정기총회에서도 협회가 2019 3 18일 창립총회를 시작으로 8년 동안 활동해 왔다는 점이 공식적으로 소개되었다.

홍원희는 초대 회장으로서 협회의 기틀을 세우는 일을 시작했다.

협회를 만든다는 것은 명함 하나를 만드는 일이 아니었다.

회원사를 모으고, 정관을 만들고,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정비사들을 하나의 방향으로 묶어야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협회를 왜 만들어야 하는지를 회원들에게 설명하는 일이었다.

그 중심에는 한 가지 생각이 있었다.

정비사가 인정받아야 자전거 산업도 발전한다.


3. 협회의 첫 번째 목표정비 기술을 나누자

홍원희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기술의 공유였다.

정비사에게 기술은 생업과 직결된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기술을 다른 정비사에게 알려주는 것이 쉽지 않다.

하지만 홍원희는 다른 생각을 했다.

한 명의 정비사가 가지고 있는 기술보다 여러 정비사가 서로의 경험을 나누는 것이 결국 대한민국 자전거 정비 수준을 높이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실제 행동으로 이어졌다.

2019년 안양 산들로자전거 살림터에서는 한국자전거정비협회 회원들을 대상으로 자전거 완전분해정비, 즉 오버홀 교육이 진행됐다.

당시 산들로자전거 살림터는 회원 정비사들이 모여 실제 자전거를 분해하고 정비기술을 공유하는 공간이 되었다.

이후에도 산들로자전거 살림터에서는 협회 회원사들과 함께 다양한 오버홀 작업이 이어졌다.

엘파마 MTB, 펫바이크, 티타늄 MTB, 카본 MTB 등 다양한 자전거를 실제로 분해하면서 정비 경험을 공유했다.


4. 오버홀이라는 새로운 정비문화를 만들다

당시 많은 소비자에게 자전거 정비는 고장 난 부품을 교환하는 정도로 인식되고 있었다.

하지만 홍원희가 생각한 정비는 달랐다.

자전거를 하나의 기계로 보고,

프레임을 확인하고,

휠을 점검하고,

허브를 정비하고,

BB를 확인하고,

헤드셋을 정비하고,

변속계와 브레이크를 점검하고,

체인과 스프라켓의 마모도를 확인하는

전체적인 정비문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협회와 함께 진행한 오버홀은 단순한 세척이 아니었다.

자전거를 완전히 분해한 뒤 각 부품의 상태를 확인하고 필요한 부품을 교환하거나 정비하여 다시 하나의 자전거로 만들어내는 과정이었다.

이 과정에서 정비사들은 서로의 방법을 보고 배우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은 시간이 지나면서 협회 회원사들의 중요한 자산이 되었다.


5. 홍원희 회장 시절 — '함께하는 정비'를 만들다

협회 초기 홍원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회원사 간의 관계였다.

자전거 매장은 서로 경쟁하는 관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같은 업종에서 일하는 동료이기도 하다.

누군가 가지고 있는 기술을 다른 사람이 배우고,

어려운 정비가 있으면 다른 회원사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특수한 부품이나 정비기술이 필요하면 서로 연결해 주는 것.

이러한 관계가 만들어져야 협회가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이후 협회 활동에서는 회원사끼리 기술을 공유하고 필요한 정비를 서로 의뢰하는 모습이 나타났다.

2021년에는 산들로자전거에서 정비가 어려운 서스펜션을 협회 회원사인 원주 바이크스테이션에 의뢰해 정비한 사례도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단순한 정비 의뢰가 아니었다.

"내가 모르는 것은 다른 회원에게 배우고, 내가 잘하는 것은 다른 회원에게 나눈다."

협회가 추구했던 상생의 모습이었다.


6. 자전거 정비업의 기준을 만들다

협회가 성장하면서 또 하나의 중요한 과제가 생겼다.

바로 정비 공임의 기준이었다.

같은 작업을 하더라도 매장마다 공임이 크게 다르면 소비자는 정비 가격을 신뢰하기 어렵다.

정비사 역시 자신의 기술과 노동에 대한 적정한 가치를 인정받기 어려웠다.

한국자전거정비협회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비 공임표를 제정·운영하며 소비자에게 올바른 정비 공임 기준을 알리고 투명한 정비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변화였다.

자전거 정비를 단순한 서비스가 아니라 전문 기술직으로 인정받게 하기 위한 첫걸음이었기 때문이다.


7. 소비자를 찾아가는 협회

협회의 활동은 회원사만을 위한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자전거 이용자들에게 직접 다가가는 활동도 시작했다.

전국 회원사가 참여하는 자전거 무료점검 행사를 통해 소비자의 자전거 상태를 확인하고 안전한 자전거 이용을 돕는 활동을 이어갔다.

2025년에도 안양 산들로자전거 살림터가 협회의 무료점검 행사에 참여하여 지역 주민들의 자전거를 점검했다. 당시에도 점검과 정비는 다르다는 점을 알리며 안전을 위한 점검의 의미를 설명했다.

이러한 활동은 협회가 단순한 업계 단체가 아니라 자전거 이용자의 안전을 생각하는 조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8. 전기자전거 시대를 만나다

자전거 시장은 크게 변했다.

일반자전거 중심이었던 시장에 전기자전거가 빠르게 들어오기 시작했다.

정비사에게도 새로운 공부가 필요했다.

모터,

배터리,

컨트롤러,

PAS 센서,

브레이크 차단장치,

디스플레이,

스로틀,

각종 전기 배선과 커넥터.

기존의 자전거 정비기술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홍원희 역시 전기자전거 정비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2022년에는 홍원희 당시 협회장이 전기자전거 관리 방법을 설명하는 영상도 공개되었다.

이후 협회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졌다.

자전거 정비에서 전기자전거 정비로 영역이 넓어졌기 때문이다.


9. 제조사와 정비업체를 연결하다

전기자전거가 늘어나면서 새로운 문제가 발생했다.

제조사마다 부품과 배선 방식이 다르고 정비자료가 부족한 경우가 많았다.

정비사는 고장 난 제품을 앞에 놓고도 제조사로부터 충분한 기술자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래서 협회는 제조·수입업체들과의 협력을 추진했다.

2026년 현재 협회는 여러 자전거 및 용·부품 수입사와 MOU를 체결하고 있으며, 국내 생산 부품과 한국 브랜드 자전거를 우선적인 사업 파트너로 삼아 상생구조를 만들어가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것은 창립 당시부터 이어진 정비업계의 목소리를 하나로 모으자는 생각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다.


10. 홍원희의 두 번째 역할기록하는 정비사

홍원희에게는 또 하나의 특징이 있다.

바로 기록이다.

자전거를 정비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어떤 부품이 마모되었는지,

어떻게 분해했는지,

어떤 방법으로 수리했는지,

정비 후 어떤 상태가 되었는지를 글과 사진으로 남겨왔다.

'자전거정비교실'이라는 이름으로 오랫동안 정비 사례를 기록해 온 것도 그 때문이다.

이 기록들은 시간이 지나면 단순한 블로그 글이 아니다.

그 시대의 자전거와 정비기술을 보여주는 정비 역사자료가 된다.

2019년부터 이어진 산들로자전거의 오버홀 기록만 보더라도 다양한 자전거의 실제 정비 사례가 축적되어 있다.


11. 2021현장을 찾아가는 협회

홍원희 회장 시절 협회는 회원사들과 직접 현장을 찾아가는 활동도 진행했다.

2021년에는 홍원희 회장과 조중희 부회장이 전국 회원사와 현장을 둘러보며 회원들과 소통한 기록이 남아 있다.

협회는 회의실에서만 존재하는 조직이 아니었다.

회원사를 찾아가고,

정비 현장을 보고,

회원들의 어려움을 듣고,

서로의 경험을 나누는 조직이었다.

 


12. 회장은 바뀌어도 협회는 계속되어야 한다

홍원희는 초대 회장과 제2대 회장을 맡으며 협회의 기반을 만들었다.

하지만 협회의 목적은 특정 회장의 이름을 남기는 것이 아니었다.

회장이 바뀌고 세대가 바뀌어도 정비사들이 함께할 수 있는 조직을 남기는 것이었다.

이후 조중희 회장에 이어 2026년 제4기 문성진 회장이 취임했다.

2026년 정기총회에는 74개 회원사가 참석했으며, 협회가 2019년 창립 이후 8년 동안 활동해 온 것으로 공식 소개되었다.

이것은 창립 당시의 사람들이 만든 조직이 새로운 사람들에게 넘어가며 계속 살아 있다는 의미다.


13. 홍원희가 남긴 것은 회장이라는 직함이 아니다

홍원희의 협회 활동을 돌아보면 '초대 회장'이라는 직함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그가 남긴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정비사들이 하나로 모일 수 있는 조직을 만들었다.

둘째, 정비기술을 서로 공유하는 문화를 만들었다.

셋째, 오버홀이라는 전문 정비문화를 회원사들과 함께 발전시켰다.

넷째, 정비 공임의 기준을 마련하는 데 힘을 보탰다.

다섯째, 제조사와 정비업체가 소통할 수 있는 길을 만들었다.

여섯째, 소비자를 위한 자전거 무료점검 문화를 확산시켰다.

일곱째, 자신의 정비 경험을 글과 사진으로 기록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가진 기술을 나만의 것으로 만들지 말자."

라는 생각이었다.


14. 8년을 돌아보며

2019년 처음 협회를 만들 때만 해도 이 조직이 8년 뒤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확신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자전거 시장도 변했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도 변했고,

자전거를 판매하는 방법도 변했고,

정비해야 할 자전거도 변했다.

일반자전거에서 MTB와 로드바이크를 거쳐 전기자전거가 시장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온라인 판매와 직구가 늘면서 정비업체가 겪는 어려움도 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자전거는 결국 사람이 정비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좋은 자전거도 관리하지 않으면 고장 난다.

비싼 자전거도 정비하지 않으면 안전하지 않다.

전기자전거 역시 결국 정비사의 손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자전거 정비라는 직업은 앞으로도 존재해야 한다.


15. 홍원희가 꿈꾸었던 협회

협회가 만들어진 지 8.

이제 홍원희가 바라보는 협회는 과거와 조금 달라졌을 것이다.

처음에는 협회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면,

이제는 협회가 다음 세대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가 더 중요한 질문이 되었다.

정비기술을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전기자전거 정비기술을 축적하고,

후배 정비사들에게 교육하고,

제조사로부터 정확한 정비자료를 제공받고,

소비자가 믿고 찾아갈 수 있는 정비업체를 만들고,

정비사의 노동과 기술이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게 하는 것.

이것이 앞으로 한국자전거정비협회가 가야 할 길일 것이다.


16. 그리고 홍원희의 마지막 역할

홍원희는 지금도 자전거를 고친다.

협회의 회장을 내려놓았다고 해서 정비사의 삶을 내려놓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부터가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26년 넘게 자전거를 판매하고 정비하면서 경험한 것,

수많은 자전거를 분해하면서 배운 것,

수많은 고객을 만나면서 얻은 것,

전국의 정비사들과 함께하면서 배운 것.

이 모든 것을 이제는 기록으로 남겨야 할 시간이다.

한 사람의 기술은 그 사람이 일을 그만두면 사라질 수 있다.

하지만 기록된 기술은 후배에게 전달될 수 있다.

그래서 홍원희가 앞으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어쩌면 또 하나의 협회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난 8년의 경험을 후배들이 배울 수 있는 자료로 남기는 것일지도 모른다.


17. 마지막 이야기

한국자전거정비협회 8년의 역사는 홍원희 혼자 만든 역사가 아니다.

수많은 회원사와 정비사들이 함께했고,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웠으며,

때로는 의견이 달랐고,

때로는 어려움도 겪었다.

그러나 그 과정이 있었기에 오늘의 협회가 존재한다.

홍원희가 시작한 것은 하나의 조직이었다.

하지만 그 조직을 통해 만들어가고 싶었던 것은 자전거 정비문화였다.

그리고 그 문화는 이제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회원 모두의 것이 되었다.

2019년 시작했던 작은 움직임이 2026 8년이라는 시간을 넘어섰다.

돌아보면,

협회를 만든 것은 홍원희였지만,

협회를 성장시킨 것은 회원들이었고,

협회의 미래를 만드는 것은 앞으로의 정비사들이다.

그래서 한국자전거정비협회의 8년은 끝난 역사가 아니다.

이제부터 후배들에게 물려줄 역사를 만들어가는 시작이다.

홍원희와 한국자전거정비협회 8

자전거를 고치는 사람들의 시간이 대한민국 자전거 정비의 역사가 되다.

무더위가 절정을 이루던 8월, 잠시 자전거 수리공의 일상을 내려놓았다.

2026년 8월 7일.

아내와 딸, 그리고 우리 가족의 또 한 식구인 찰스와 함께 충남 태안으로 2박 3일 여행을 떠났다.

요즘처럼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다 보면 가족과 함께 어디론가 떠나는 일도 마음먹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이번 여행은 특별한 목적지를 정해놓기보다는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길을 나섰다.

날씨는 무척 더웠다.

하지만 여행을 떠나는 마음만큼은 오랜만에 가볍고 설렜다.

2026년 8월 7일부터 9일까지, 우리 가족의 태안 여행 이야기를 시작해 본다.

자동차가 많이 밀릴 것이라는 생각과는 달리, 생각보다 길이 막히지 않아 약 2시간 30분 정도를 운전해서 태안에 도착했습니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지자 자연스럽게 “오늘은 어디에서 점심을 먹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늘 여행을 다닐 때마다 인터넷으로 맛집을 검색해 보곤 하는데, 이번에는 조금 색다르게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평소 좋아하던 식객 허영만 작가님이 소개한 맛집을 검색해 보았습니다.

찾아낸 곳은 만리포의 너울회집이었다.

아내와 딸, 그리고 찰스와 함께 자리를 잡고 우리가 주문한 음식은 회비빔밥과 물회였다.

식당은 만리포해수욕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절벽과 방파제 위에 작은 건물 하나가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이 오히려 정겹게 느껴졌다.

바다를 바라보며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이런 곳에서 먹는 한 끼도 여행의 추억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 나온 회비빔밥과 물회.

한입 맛보는 순간 생각보다 훨씬 맛이 좋았다.

대궐 같은 좋은 곳에서 차려진 음식보다도 더 맛있게 느껴졌다.

아마도 만리포 바다를 바라보며 가족과 함께 먹었기 때문일 것이다.

무더운 날씨에 먼 길을 달려왔지만, 시원한 바다 풍경과 맛있는 음식 덕분에 여행의 피로가 한순간에 사라지는 듯했다.

태안 여행의 첫 식사부터 제대로 찾아온 것 같다.

숙소까지는50분 정도 걸린다고 하고 배도 부르니 가까운 곳을 찾아보기로 하였다.

맛있는 점심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다시 차에 올랐다.

다음 목적지는 태안의 숨은 명소로 알려진 용난굴이었다.

만리포의 시원한 바다를 뒤로하고 또 다른 태안의 풍경을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섰다.

무더운 날씨였지만 가족과 함께 떠난 여행이라 그런지 발걸음은 가벼웠다.

과연 용난굴에서는 어떤 풍경을 만나게 될까?

우리 가족의 태안 여행은 이제 또 다른 이야기를 시작한다.

조금 외진 곳에 자리하고 있는 용난굴을 찾아가기 위해 솔밭길 임도를 따라 한참을 운전했다.

차를 세워놓고 다시 걸어야 했다.

약 10~15분 정도 바닷가를 따라 걸어가야 했는데, 길이라고 하기보다는 모래와 돌무더기가 이어진 해안길이었다.

한여름의 태양은 정말 뜨거웠다.

너무 더운 날씨 때문인지 용난굴을 찾아온 사람은 우리 가족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바닷길을 걷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햇볕에 달궈진 모래와 돌은 발을 내디딜 때마다 뜨거운 열기를 그대로 전해주었다.

아내와 딸, 그리고 찰스 까지 더위에 지쳐가면서도 우리는 목적 지를 향해 천천히 걸었다.

“태안에는 이런 곳도 있었구나.”

용난굴을 둘러본 뒤에는 바로 숙소로 향하지 않고, 태안까지 왔으니 바닷가를 조금 더 걸어보기로 했다.

태안에는 크고 작은 해수욕장이 워낙 많아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작은 해수욕장을 찾아 들어갔다.

그런데 한낮의 더위는 정말 살인적이었다.

해수욕장에 도착해 보니 우리 가족 과 아주 적은 피서객들만 있었다.

평소라면 피서객들로 북적였을 바닷가가 마치 사람이 모두 빠져나간 한적한 바닷가처럼 느껴졌다.

뜨거운 햇볕 아래 펼쳐진 넓은 모래사장과 조용한 바다.

이렇게 더운 날씨에는 사람들이 바다를 찾아올 법도 한데, 오히려 너무 더워서 아무도 나오지 않은 듯했다.

그래도 가족과 함께 바닷가를 천천히 걸으며 태안의 여름 바다를 눈에 담았다.

무더위 때문에 고생은 했지만, 아무도 없는 한적한 바닷가를 우리 가족이 온전히 차지한 것 같은 특별한 기분도 들었다.

우리 찰스도 평소라면 신나게 뛰어다녔을 모래사장이었지만, 이날만큼은 달랐다.

햇볕에 달궈진 모래가 너무 뜨거워 찰스마저 모래사장 걷기를 거부할 정도였다.

잠시 걸어보려다 뜨거운 모래에 발을 움찔거리며 가족들 곁으로 돌아오는 찰스를 보니 웃음이 나왔다.

사람도 견디기 힘든 더위였으니 찰스에게는 얼마나 뜨거웠을까.

또한 이번 여행에서 바라본 서해안 해수욕장의 분위기는 예전과는 사뭇 달라 보였다.

한때 여름이면 피서객들로 북적였을 해수욕장은 한산하다 못해 텅 빈 모습이었다.

해수욕장 주변의 캠핑장 데크도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채 비어 있었고, 문을 닫은 듯한 점포들도 눈에 들어왔다.

물론 살인적인 폭염 때문에 사람들이 바깥 활동을 피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바닷가를 둘러보면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단순히 날씨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서해안 해수욕장의 여름 경기가 바닥을 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을 떠나 즐거워야 할 마음 한편에, 오랫동안 지역의 관광과 함께해 온 해수욕장의 쓸쓸한 모습이 마음에 남았다.

우리 가족의 여행에는 나름의 작은 철학이 하나 있다.

여행을 떠나면 음식에 필요한 모든 식재료는 가능하면 현지에서 구입한다는 것이다.

그 지역의 시장이나 마트, 동네 가게를 찾아 직접 장을 본다.

그곳에서 생산된 농수산물을 만나고, 현지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도 자연스럽게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태안 여행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관광지만 찾아다니는 여행보다는 그 지역에서 장을 보고, 그곳의 음식을 먹으며 태안의 일상 속으로 조금 들어가 보는 것이 우리 가족이 여행을 즐기는 방법이다.

이번에는 과연 태안에서 어떤 식재료를 만나게 될까?

태안 읍내 마트에 들러 수박과 삼겹살, 키조개 구이용 재료, 각종 음료와 햇반, 그리고 여러 가지 채소를 구입했다.

여행지에서 먹을 저녁거리를 직접 준비하고 나니 장바구니가 제법 묵직해졌다. 하지만 가족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해 먹을 생각을 하니 마음은 오히려 즐거웠다.

장을 모두 보고 이제 숙소로 향했다.

낮은굴뚝 애견펜션에는 샤샤가 살고 있습니다

이번 여행은 찰스도 함께하는 가족여행이었기에 애견동반이 가능한 펜션을 선택했다.

우리가 머물 곳은 태안 이원면에 있는 낮은굴뚝 애견펜션이었다.

뜨거운 햇볕 아래 용난굴을 다녀오고, 또 바닷가까지 걸었던 터라 가족 모두가 조금 지쳐 있었다.

이제 숙소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시원한 곳에서 쉬어야겠다.

무엇보다 하루 종일 우리를 따라다닌 찰스가 편하게 쉴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우리 찰스에게도 이번 여행은 특별한 휴가였다.

찰스가 수영을 하는 것은 1년에 한두 번, 여름휴가 때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물에 들어가는 것도 조금 망설였는데, 이제는 제법 익숙해졌는지 혼자서도 능숙하게 수영을 한다.

물에 들어가자마자 앞발을 열심히 움직이며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니 어느새 수영 실력이 많이 늘었다.

매일 수영하는 것도 아닌데 여름휴가 때마다 한 번씩 물을 경험하다 보니 이제는 제법 자신감이 붙은 모양이다.

찰스에게도 이번 태안 여행은 바다와 수영을 마음껏 즐긴 특별한 여름휴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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